한국의 잊혀진 비행기: 비거(飛車)와 항공 상상력의 기원
임진왜란 중 등장한 ‘하늘을 나는 수레’ — 그것은 단순한 전설이었을까, 아니면 초기 형태의 비행체였을까?
이 글은 조선시대의 미스터리한 비행 장치 ‘비거(飛車)’에 대한 기록을 탐구하고, 그것이 항공학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본다.
1. 서론 – 근대 항공 이전의 하늘을 나는 상상력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제작한 플라이어(Flyer) 는 인류 항공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한 인물이 이미 ‘비거(飛車)’라 불리는 비행 장치를 제작하고 비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정평구(鄭平九).
비거는 문자 그대로 “하늘을 나는 수레”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여러 문헌에서 언급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일까, 아니면 실제 실험의 흔적일까?
본 글은 비거에 관한 역사적 문헌을 검토하고, 다른 고대 비행 개념들과 비교하며, 조선의 과학문화 속에서 이 기록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2. 비거(飛車)란 무엇인가?
‘비거’ 또는 ‘비차(飛車)’는 18~19세기 조선 학자들의 기록 속에서 등장하는 비행 장치이다.
직역하면 “날아다니는 수레(flying vehicle)”라는 뜻으로, 전설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일부 기록은 이를 실제 기계 발명 시도로 묘사하고 있다.
본 문서에서는 조선 학자들의 발음을 따라 ‘비거’로 통일한다.
📜비거 복원 모형 (Replica artifact of the Bigeo)
3. 비거의 문헌적 근거
| 출처 | 저자 및 시대 | 내용 | 신뢰도 |
|---|---|---|---|
| 『여암전서(Chaekchaje)』 | 신경준 (1712–1781) | 정평구가 비거를 사용해 포위된 성의 사람들을 구출했다는 기록 | 높음 |
| 『오주연문장전산고(Bigeo Byeonjeungseol)』 | 이규경 (19세기 초) | 비거의 구조와 추진 원리에 대한 상세한 기술 | 높음 |
| 『조선어문경위』 | 권덕규 (1923) | 조선시대 비행에 대한 민간 전승 정리 | 중간 |
| 『왜사기(Wae Sagi)』 | 미상 | 1592년 비거 사용 언급 (검증 불가) | 낮음 |
4. 정평구 – 발명가인가, 전설의 주인공인가?
정평구(1566–1624)는 실존 인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 출생지: 전라북도 김제시 부용면
- 경력: 과거에 낙방 후 군문에 입문, 이억기·김시민 휘하에서 화약과 무기 기술 담당
- 활동 시기: 임진왜란 중
- 기록 근거: 묘소와 관찬 문헌에 실명 기재
따라서 그는 단순한 전설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하며 창의적 군사 기술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5. 비거의 설계와 작동 원리
이규경(19세기)의 『오주연문장전산고』 기록에 따르면, 비거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 형태: 백로나 따오기를 닮은 구조
- 부양 원리: 가죽 풀무의 압축 공기를 분사하여 상승
- 추진 방식: 4명이 내부 지렛대를 조작해 날개를 퍼덕이게 함
- 고도: 약 100장 (약 300m)
- 비행 거리: 약 30리 (약 12km)
이 묘사는 오늘날의 글라이더나 인력 오니소프터(ornithopter) 와 유사하다.
6. 비거 vs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 구분 | 비거 (조선, 1592) | 플라이어 (1903) |
|---|---|---|
| 시대 | 약 1592년 | 1903년 12월 17일 |
| 추진력 | 인력 + 공기압 | 가솔린 엔진 + 프로펠러 |
| 비행 거리 | 약 12km | 36.5m~259m |
| 고도 | 약 300m (기록상) | 약 3m |
| 발명가 | 정평구 | 오빌 & 윌버 라이트 |
| 물적 증거 | 문헌 기록만 존재 | 사진, 설계도, 실물 |
비거는 실증적 증거는 없으나, 신뢰할 만한 문헌과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신화로만 보기 어렵다.
7. 고대 문명 속의 비행 상상력
| 문명 | 비행 개념 | 시대 | 설명 |
|---|---|---|---|
| 인도 | 비마나(Vimana) | 고대 서사시 시대 | 신들의 하늘 수레, 베다 경전 언급 |
| 그리스 |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 | 기원전 8세기 | 밀랍과 깃털의 날개로 비행한 신화 |
| 이슬람권 | 압바스 이븐 피르나스 | 9세기 | 글라이더 비행 시도 후 추락 |
| 유럽 (르네상스) | 레오나르도 다빈치 | 15세기 | 기계식 새 날개, 수직 나사형 설계 |
| 중국 | 인간 연 비행 실험 | 고대~중세 | 감시·실험용 연 활용 |
비거는 이들 중에서도 기계적 구조와 실존 인물이 함께 언급된 드문 사례로, 인류의 항공 상상력사 속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8. 조선의 기계공학적 성취
| 발명품 | 발명자 | 용도 | 의의 |
|---|---|---|---|
| 자격루 | 장영실 | 자동 시보 장치 | 세계 최초의 물시계 타종 시스템 |
| 혼천의 | 조선 천문관 | 천체 관측 | 정교한 기어식 천체 모델 |
| 측우기 | 세종대왕 시기 | 강우량 측정 | 세계 최초의 기상 측정기 |
| 화차 | 최무선 계열 | 다연발 로켓포 | 근대 로켓 기술의 전조 |
| 거북선 | 이순신 | 철갑선 | 해상 전투 혁신 |
| 비거 | 정평구 | 비행 장치 | 실증 불가하지만 기계적 상상력의 상징 |
9. 비거의 의미와 유산
비거는 신화와 과학, 군사 기술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이다.
그 실체가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조선이 이미 하늘을 ‘상상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비거는 날지 않았을지라도, 조선의 과학정신은 이미 하늘을 꿈꾸고 있었다.”
결론
비거는 라이트 형제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인류의 항공 상상력을 새롭게 조명하게 한다.
그것은 신화이자 실험이며, 잃어버린 과학의 한 장면이다.
오늘날 드론과 우주비행의 시대에, 비거는 한국 과학유산의 상징으로 다시금 기억되어야 한다.